[방명록]2008.8.8 - 현재




(2008년 6월 2일 천섬가는 길목에서)

시간은 정말 빠르고, 기억은 너무 허약하군요.
내가 거기에 있었는지조차 이젠 알 수가 없네요.
망각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인지 저주인지 누군들 단언할 수 있을까요.


다녀간 흔적은 여기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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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퇴진 배너 출처 : http://anti2mb.springnote.com/

by 시바 | 2009/08/08 23:22 | [방명록] | 트랙백 | 덧글(40)

하루 일과를 끝내고 늦은 밤 커피를 마시다

늦은 밤에 커피가 무지 땡기는 경우는 대개,
술을 마시고 몽롱한 기운에 목이 마를 때,
그리고 완전히 지쳐버려 산중턱에 있는 집까지 한 번에 올라갈 기운이 없을 때.
오늘은 후자다. 특강 조교를 한 이후, 수요일 밤 11시엔 항상 그렇다.
오늘로 3주째, 수요일마다 우리집 고양이들과 길냥이들의 밥걱정 따위는 미뤄버리고 커피집 흡연실에 주저앉는다.
한동안의 금연 이후 사질 않았던 담배랑 라이터도 사 들고 들어와 얼음이 잔뜩 들어간 아이스커피를 들이키며 담배를 핀다. 

피곤이 온 몸을 내리누른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부터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졌지만, 일의 양은 도저히 줄지 않는다. 
오늘 제대로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은 약 1시간 반가량.
그나마 강의와 토론이 재미있지 않다면, 당장 때려쳐버렸을 것이다.
방금까지 앉아서 강의와 관련된 메일들을 처리했다. 
내일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만,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련다.
비록 강의조교로 미니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이점을 충분히 누려볼 계획이지만,
결국 문명의 이기는 일의 양과 시간을 늘리는 도구가 된다.
지친 상태에서 주저앉아 하는 노트북을 꺼내들고 하는 짓이 결국 급한 일처리이니. 제길.
이제 다시 몸을 움직여야겠지.
얼음이 녹고 있다.
집으로 돌아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


오늘 <NGO와 법의 지배>강의 후반부는 "촛불집회"에 대한 토론이었다.
NGO 활동가들과 대법원, 대검찰청, 경찰청 등에 소속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촛불집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동안 촛불집회에 대한 학자들이나 NGO 활동가들의 평가글들을 봐왔고 오늘도 비록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각자 자신의 경험과 위치에서 나올 수 있는 솔직한 평가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재미있었다.
결국 내가 가진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 역시 나의 경험과 위치에서 나온 것이지.
무슨무슨 조직에 소속되어 참여했던 집회들과는 사뭇 달랐던 촛불집회의 모습에 대한 나의 불편함이나,
폭력, 그것이 누구의 폭력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감정과 평가들.
이명박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나의 정치적 판단 역시
법질서와 준법, 합법, 불법, 그리고 권리에 대한 평가를 달리 만든다.

누구는 촛불집회에서 법의 지배가 실현됨을 이야기한다.
생활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의 폭력집회에 대한 자발적인 제재나 헌법을 인용하여 권리주장을 하는 것. 
누구는 촛불집회가 6.10 항쟁과 같은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준법의식의 부정적인 단면이라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이 문제는 결국 법으로부터 혹은 국가로부터 국민이 보호받기를 위하는 이익의 성격문제로 보인다.
이른바 소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에서는 교육의 문제나 대운하문제, 민영화에 대한 의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이 한꺼번에 표출되었다. 사익과 공익의 주장이 공존했고, 그것에 대한 선가르기 역시 다양했다.
사실 사익과 공익의 경계는 개념적인 차원을 제외하면 이미 모호하다. 아마 촛불집회가 6.10항쟁과 다른 측면은 바로 거기에 있을 듯하다. 그 모호한 경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
그러나 이른바 '공익'으로 범주화되는 이익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형식과 틀거리가 그동안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확립되어 온 것과 달리, 다른 이익은 오히려 모호하다. 그것을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응집된 정치적 주장으로 바꾸어낼지,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틀이 존재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래서 6.10항쟁과 같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공익'이라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왔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나가야할지, 아니면 사익과 공익의 모호한 경계를 좀 더 포괄적으로 개념화하고 확장해나갈지 역시 알 수가 없다. 법이 지켜야 하는 정의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이익과 권리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는 결국 이즘의 문제로 귀결되는게 아닐까?
 

나의 하드 용량의 한계로 더이상 고민을 진척시킬 순 없겠다.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로 미루고.
      
  

by 시바 | 2008/09/18 00:30 | *혼자놀기 | 트랙백 | 덧글(8)

그리워하며 생각하다.

벌써 몇번의 추석이 지나갔다. 하늘공원의 방문도 이젠 뜸해졌다. 그를 그리워하고 그에게 미안해하는 횟수도 점차 줄어든다. 이젠 가끔만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만 눈물이 난다.
그가 총여실 벽에 그렸던 짐 모리슨을 제외하고 그의 모든 게 어렴풋하다. 몇 년 전 그의 소식을 듣고 난 이후로 내내, 그의 모습을 다시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가 선물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을 들춰보고야, 우리가 피의 남매였다는 게 생각난다. 그래, 학번 차이도 꽤 나고 함께 활동한 적도 없는 그와 내가 가졌던 공통점은 호러무비였다. 공포영화를 찾아보러다니고, 피와 공포, 내부가 외부로 드러날 때의 소름끼침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담배 큰 모금을 빨았더랬다. 항상 찍고 싶어하던 수중씬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고 즐겁게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는 수중씬이 자신의 아이디어라고도 자랑했었지. 얇게 하늘로 뻗어 나풀나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항상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심지어 원치않는 결혼식 촬영과 쪼들리는 돈때문에 지쳐버렸다고 이야기할 때조차도. 나의 어린 시절 성마름과 어설픔은 그의 조용하고 따뜻한 미소로 덮여졌다. 그렇지만 완전히 다독여지기엔 내가 너무 어설폈다. 당시 그의 그런 연약함이 좋았다. 그리고, 답답했다. 정말 미안해. 내가 그에게 화를 내고, 그가 미안하다고 하고, 난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그와 다시 만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는 내 말대로 해주었다. 그 뒤로 몇 년이 흐르고, 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풀린 이후에도 한참을 연락하지 않았다. 미안해. 다 미안해. 모든 게 다.
그가 뿌려졌던 하늘공원이 그가 좋아했던 그곳과는 매우 달라졌지만, 그가 좋아했던 바람은 그곳에 여전하다. 거기서 담배를 태워주고 그가 맛있어 했던 흑주를 뿌린다. 그가 평안해졌길 바란다. 보고 싶다.



은어비행(1999/7min/35mm/Color/감독-봉근웅)
난 그의 다른 영화보다 덜 우울한 이 영화가 더 좋다.
영화를 찾지못하고, 그의 설명이 덧붙여진 다른 사이트를 찾았다. 당시 봉을 보게 되어서 반갑고 고맙다.

by 시바 | 2008/09/17 05:11 | *혼자놀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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